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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베르] 兩價感情

​베토리 @betorii16

If 귀환 라이베르

돌아왔다, 우리의 고향으로.


파라디 섬의 악마들을 수도 없이 죽이고, 시조를 탈환해 돌아왔다. 마레군의 지원을 받아 파라디 섬을 전멸시켰다. 우리-라이너 브라운, 베르톨트 후버, 애니 레온하트-는 죽지 않은 채로.


우리를 데리러 온 군함은 마레로 돌아가는 내내 축제의 분위기였고, 베르톨트와 라이너는 생전 처음 마셔보는 술의 힘에 굴복한 채, 자신들의 위업을 떠들어댔다. -베르톨트는 조용한 성격이지만, 술에 취하면 말이 많아지는 것 같다- 마레의 군인들은 생각보다 방정맞은 갑옷 거인, 초대형 거인의 모습에 떨떠름했지만, 어쨌든 완벽한 성과를 얻은 것이니 함께 즐겼다. 애니는 그 모습이 한심하다는 듯 훑고 선실로 들어가 잠을 청했지만.


술에 취해 웅얼거리는 베르톨트를 살펴보던 라이너는, 그에게 바람을 쐴 것을 권유했다. 처음 알았지만, 라이너는 꽤나 술을 잘 마시는 편이었다. 취기가 올라오나 싶더니 금세 멀쩡한 정신으로 돌아왔다. 반면 베르톨트는 술이 잘 받지 않는 몸인 것 같았다. 긴 팔다리를 허공에 몇 번 휘저은 뒤에야 라이너의 단단한 팔뚝에 의지할 수 있었다. 


라이너는 갑판에 앉아 베르톨트를 자신에게 기대게 한 뒤, 까맣기만 한 밤바다를 바라보았다.


“베르톨트, 우리가 성공했다. 우린 이제 진정한 명예 마레인이야.” 고른 숨소리를 내며 눈을 감은 베르톨트에게 말을 건넸다. 어서 어머니가 보고 싶어, 어머니는 나를 보면 뭐라고 하실까. 너는 아버지께 어떤 인사를 건넬 거냐, 이런 심심한 소리를 내뱉는 라이너는 베르톨트가 듣고 있는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계속해서 말이 없는 걸 보니 잠든 건가, 싶어서 그제야 속마음을 꺼내기 시작했다. 베르톨트, 너는 처음 사람을 죽였을 때 무슨 생각을 했냐. 그 조심스러운 질문을 건네고, 라이너는 잠시 배를 둘러보았다. 아직 안에서는 파티가 한창이고, 다들 취해 우리가 나와 있는 것을 모른다. 그 생각에 라이너는 뒷말을 이었다.


나는, 내가 문을 부수고 사람들이 죽었을 때, 당연한 일이라고, 내가 꼭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파라디 섬의 악마들과 함께 지낼수록 잘못된 일이라고 느껴지더군. 지금도, 내가 잘한 건지 잘 모르겠어. 너는 어떠냐, 베르톨트.


베르톨트가 잠들었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겐 털어놓고 위로받고 싶었다. 그리고 그 대상은 베르톨트였다. 언제부터 자신이 베르톨트를 이렇게 의지하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처음 파라디섬에 왔을 때, 의지할 수 있는 상대는 마르셀뿐이었다. 하지만 자신 때문에 마르셀이 죽고 난 이후로, 자신이 마르셀의 역할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처음엔 나름 좋았다. 마르셀을 잃은 것은 명백한 자신의 실책이지만, 꼴등이라고 업신여김을 받던 자신이, 마르셀이 아니었다면 계승자도 되지 못하였을 자신이, 자신보다 잘났던 이들에게 지시하고 명령할 수 있다는 것은 스스로를 꽤나 고양시켰다. 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계획-그게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해도-을 자신이 직접 세우고 행동하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잔인하고 구역질 나왔다. 누군가의 지시를 받아서 하는 것과는 또 다른 죄책감을 불러오는 일이었다. 


그래서, 어느 날은 애니와 베르톨트에게 벌컥 화를 내었다. 너희는 왜 너희 머리로 생각이란 걸 하지 않는 거냐 그렇게 소리치는 나에게, “돌아가자는 우리를 협박한 건 너야, 라이너 브라운. 마르셀의 몫을 하겠다고 한 것도 너고.” 애니는 경멸하는 눈빛을 보내고 뒤돌아섰다. 그래, 그랬지. 내가 이들을 협박했었다. 나에게 소리칠 자격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베르톨트는 나를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 


라이너, 너는 틀리지 않았어. 그때, 그렇게 돌아갔다면 우리는 거인의 힘을 박탈당했을 거야. 우리는 너를 믿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야. 분명 애니도.. 하지만 그게 부담되었다면 미안해, 라이너. 


그래, 베르톨트에게 의지하기 시작한 건 이 날부터였다. 더 이상 명령을 내리고, 명령을 수행하는 수직적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파트너가 된 것이다.

으음.. 라이너, 


라이너가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베르톨트는 라이너의 어깨에서 뒤척였다. 


라이너, 나도 그래.. 우린 틀리지 않았지만, 그들도 틀리지 않았어.. 이젠 모르겠어..


라이너의 말을 들은 것인지, 잠꼬대인지 모를 대답을 베르톨트는 중얼거렸다. 

우리는 순탄하게 레벨리오 항구에 들어섰다. 오랜만에 보는 어머니의 얼굴이 반가웠다. 해낼 줄 알았다, 라이너. 어머니는 여전히 나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업적을 걱정하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며 자신에게 안겨오는 어머니가 반가우면서도, 숨이 막혔다. 
파티를 하자며 모인 가족들은 라이너에게 파라디-파라디섬의 악랄한 악마들을 어떻게 죽였는지, 그의 영웅담을 기대하며-에 대해 물어보았다. 라이너는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난 그 섬에서 군대에 잠입했어. 그야말로 악마가 따로 없는 잔악무도한 놈들이었지. 놈들에게 양보 정신 따위는 없거든. 〮〮〮 정말 구제불능인 놈들이었어. 뭐 하러 화장실에 왔는지 까먹는 바보에서부터 자기 생각만 하는 불성실한 녀석, 남을 더 걱정하는 더럽게 성실한 녀석, 무조건 돌진할 생각밖에 없는 녀석과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뒤를 따르는 녀석들, 그 밖에도 별의별 놈들이 다 있었고, 우리도 거기 있었지. 거기서 지냈던 날들은 지옥이었어. 


즐거웠던 추억이라도 말하는 듯 웃고 있는 라이너를 보는 가족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퍼뜩 정신이 든 라이너는 말이 너무 많았다며, 잊어달라 말했다. 그래, 우리는 이제 파라디의 병사가 아니다. 처음부터 파라디의 병사였던 적은 없다. 라이너는, 가족들에게조차 속마음을 말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평생을 세뇌받은 사람들은 아무리 말해도 이해할 수 없다. 라이너들이 겪은 것은 악마가 아니라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라이너는 씁쓸하게 웃었다. 


뒤늦게 아버지의 사랑을 깨달은 애니는, 귀환한 후로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 언제나 아버지와 있느라, 임무가 주어지지 않은 이상은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라이너와 베르톨트는 레벨리오, 자신들의 집에서 겉돌았다. 자신을 “이해해 줄” 가족이 그들에게는 없었다. 자연스럽게 라이너와 베르톨트는 함께 했다. 자랑스러운-그들이 정말 자랑스럽다고 생각했을진 모르겠지만- 명예 마레인의 빨간 완장을 달고, 수용소를 빠져나가 바다를 바라보기도 하고, 전망대에 올라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였다.


“그곳과 같아, 라이너.”


마레에서의 생활이 평안할수록, 병사 시절이 그리웠다. 그곳에는 자신을 도구가 아닌 그냥 한 사람, 친구로 생각해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자신들이 망친 것이었지만, 그 시절이 너무나도 그립고, 그 사람들이 그리웠다. 매일 밤 함께 책을 나눠 읽고, 체스를 함께 두던 친구들이, 언젠가 함께 꼭 바다를 보러 가자고 말하던 친구들이, 그리웠다. 우리는 이렇게 바다를 보고 있는데, 너희들은. 


꿈꾸듯이 말하는 베르톨트는, 눈이 시리게 아름다웠다. 그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그리고 나를 이해해 줄 사람도 베르톨트밖에 없다. 라이너는 생각했다. 세상에 나를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뿐이라는 사실은, 그 한 명을 특별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라이너는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이 한 사람이 사라지는 것이. 그리고 그것은 베르톨트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13년으로 정해져 있는 그들의 수명이 다행스럽다고 생각했다. 한 날, 한 시에 다른 이에 의해 죽음을 맞이할 테니.

“라이너, 우리는 죽으면 편해질 수 있을까?”
“..아니, 우린 죽어서도 다른 사람의 기억 안에서 살아가고,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를 거다.”
“그래.. 우리는 자유를 얻었지만, 자유롭지 못하네. 우리가 틀렸었어, 라이너.”
베르톨트의 목소리가 서글프다. 라이너는 대답할 수 없었다. 둘 사이엔 꽤나 긴 시간 적막이 흘렀다.
“부탁이 있어, 라이너.

네가 나를 계승했으면 해.”
“..그게 무슨”
“무리한 부탁인 것 알아, 그렇지만 라이너 우리에겐 시간이 별로 없어. 우리는 곧 있으면 후보생 아이들에게 계승되고, 그들은 이제 파라디 섬의 악마들 대신 다른 나라의 사람들을 죽이게 되겠지. 그리고 내가 가진 초대형 거인은 특히나 위험해.”


라이너는 가만히 베르톨트의 이야기를 들었다. 무슨 뜻인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전사 후보생 아이들에게 계승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하지만 베르톨트는 그걸 거역하려 하고 있었다. “그러니, 라이너, 네가 날 계승하고, 자살해 줘.”


“…베르톨트.” 그를 잡아먹고 자살하라니. 그렇구나, 베르톨트는 잠깐이라도 시간을 벌고 싶은 것이구나. 계승되지 못하고 죽은 아홉거인은 언젠가 에르디아인의 탄생과 함께 계승된다. 내가 베르톨트를 잡아먹고 죽는다면, 마레는 두 명의 거인을 잃는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태어날 계승자가 나와 베르톨트의 기억을 읽는다면, 마레의 눈을 피해 도망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전쟁을 피할 수 있겠구나. 누군지도 모를 그 아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우리로서는 최선의 선택임이 틀림없었다. 그제야 라이너는 베르톨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라이너.” 생각하는 라이너를 베르톨트가 재촉했다. 
알겠어, 베르톨트. 네가 처음으로 나에게 한 부탁을 내가 어찌 거절할 수가 있을까.

라이너의 시신은 며칠 뒤, 수용구 근처의 숲속에서 발견되었다.


-


… 라이너, 너는 틀리지 않았어.

라이너가 베르톨트를 의지한 그 날, 그날의 모습이 
자살하기 전의 라이너가 본 베르톨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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